하필 재수도 없지, 그날따라 썩 좋지 않은 일의 연속이었다. 아침부터 잠결에 꼼지락대다가 이불과 트위스트를 추며 침대 밑으로 떨어져버리질 않나, 등교길에는 게임에 열중하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면서 게임기를 놓치는 바람에 디스플레이가 깨져버렸고, 투덜대면서 하루를 보내다 점심시간 즈음이 되어 밥 좀 여유롭게 먹어보려고 했더니 복구지역에 차원종이 갑자기 출현했다며 출동명령이 내려졌다. 그리고 거의 다 쓰러져가는 철거지대에 등장한 차원종들을 하루 종일 쌓인 분노로 처리하다가, 그만 평소답지 않은 실수를 하고 만 것이다.
"이세하! 조심해 빨리 피해!"
"어... 어엇?! 크아악!!"
철거지대에 위태위태하게 매달려있던 돌덩어리가 자신을 덮치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눈치챈 세하가 재빨리 몸을 피해봤지만, 그가 마지막으로 빠져나가려던 순간 근처 돌부리에 발이 걸려버렸고, 낙하하던 돌덩어리가 세하의 다리를 덮치고 말았다.
"...!! 이세하! 괜찮아?!"
"크으으... 으아아아...!! 아 아파!! 아파 죽겠다고!"
"알았어 조금만 기다려. 빨리 꺼내줄게. 차원종은 거의 다 정리됐어."
도저히 쉽게는 들어올려지지 않을 것 같은 돌덩이 때문에 그렇게 몇 분동안 옴짝달싹 못하던 세하는, 다행히 근처에 안전하게 대피해있던 인부의 도움으로 현장 장비를 동원해 구조되었다.
"세하... 상태는?"
"말도 마... 다리가 부러진 것 같... 으아악!"
"으... 알았어. 뒷일은 우리가 마무리할테니 유리가 세하를 근처 병원으로 좀 데려다주지 않겠어?"
"아 알았어. 일단 세하 다리를 좀 고정하..."
"야, 야야 유리야 잠깐만! 크으악!"
"아... 에헤 미안 고정한다고 붙잡아버린게 실...수였나?"
"에후... 유리야 잠깐만, 일단 내가 할게."
그리고 슬비는 훈련받았던 구급법 지식을 토대로 주변에 널브러진 적당한 목재와 챙겨둔 구급용 천으로 세하의 다리를 튼튼히 지탱해주었다.
"후, 됐어. 유리야 부탁."
"알았어. 금방 다녀올게!"
라는 사연으로 유리가 세하를 병원에 데려다주고, 아직 작전이 마무리되지 않은 탓에 세하를 그 즉시 병원에 입원할 수 있도록 몇 가지 진단 절차를 밟은 뒤 유리는 자리를 떠야만 했다. 그나마 클로저이기에 회복력이 일반인보다 좀 더 낫다는 것은 다행이었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아픈건 정말 아픈거다. 세하는 한동안 끙끙대며 괴로워할 뿐이었다. 생각보다 꽤 골절 정도가 심해서인지 꽉 조여진 깁스가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게임기도 아침에 이미 박살이 나버렸으니 더더욱 세하는 할 것이 없었다. 누워서 멍하니 천장을 쳐다보다가 그대로 새근새근 잠들어버릴 뿐이었다.
눈을 감고 지루한 잠에 애매하게 들어가던 세하는, 문득 입원실의 문이 아닌 창문 방향으로 느껴지는 짜증섞인 위상력 파동을 느껴야만 했다. 그리고 생각보다 거친 드르륵 소리와 함께 창문 밖에서 누군가가 뛰어들어왔다.
"칫 버러지 자식. 오늘 같은 모습이면 진이 빠져버리잖아."
"으... 나타 넌 왜 오늘같은 날 나타나는거야?"
"흥, 너 따위 놈한테 굳이 가질 관심 같은 건 없어. 그것도 평소답지 않게 이런 몰골을 하는 자식 따위한테는."
"......?"
"버러지 같은 자식, 이래가지고는 널 죽여도 죽이는 보람이 없는 꼴이잖아."
"...그런 말을 할 사람이 왜 여긴 굳이 찾아온거야?"
"그래, 병문안이라고 해두지. 네가 빨리 그 멍청한 다리가 붙던지 해야 승부를 낼 것 아니야!?"
"너 아직도 대공원에서 그 때 그 일 때문이냐...? 너도 생각보다 꽁한... 으으... 구석이 있는 모양인데?"
"...닥쳐! 그딴 식으로 말 돌리지 마! 짜증나면 지금 여기서 저질러 버리는 수도 있으니까."
나타는 온갖 화는 다 터뜨리면서도 정작 무기는 축 늘어뜨려놓은 채 세하를 응시하고만 있었다. 한껏 멸시하는 비웃음이 느껴지지만 세하는 정작 딱히 대응할만한 수단도 여지도 없었는데다가, 결정적으로 귀찮았다.
"아, 그래? 넌 지금 내게 단단히 착각하고 있는 모양인데... 이 나타님의 사전에 안정이란 것따위는 없어!"
그러면서 나타는 잔뜩 악랄한 웃음기를 머금은 표정과 함께 세하의 다친 다리를 노렸다. 그답지 않게 곯려보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약간은 대비하는 듯하다 풀어졌던 세하가 깜짝 놀라 다리를 지키려고 움직였는데, 오히려 맞은 것보다 움직인 것 때문에 더 큰 통증이 왔다.
"크윽... 야 나타! 너 미쳤어! 이 자식이 다친걸 뻔히 보고도!!"
"적의 약점을 집요하게 노리는 것쯤은 기본이라는 건 너도 알지않아? 넌 내게 약점을 내보였단말야. 크하하하... 한 번 더... 간다!"
"크으윽... 야 이 새X야!! 좀 그만해!!"
또 한 번의 회피동작 후 고통을 참을 수 없다는 듯이 평소에 하지 않는 말마저 봉인을 풀고 튀어나오는 세하다. 나타는 그 모습까지도 우습다는 듯이 마치 세하를 장난감 가지고 놀듯 잠시 놀다가, 견디기 힘든 고통에 이윽고 애써 나타의 멱살을 붙잡은 세하를 보더니 이내 질렸다는 듯이 짜증나는 표정으로 다시 되돌아왔다.
"...버러지, 빨리 나아서 와라. 아직 너와 못다한 것이 남아있다는 것 정도는 기억하고 있겠지...?"
"야, 그 때 그건 거기서 좀 끝내! 죽일듯이 달려들어놓고는 지금 목에 달린 그거 때문에 너 아무것도 못 했잖아. 기억 안 나?"
"...이딴 구속구 따위... 다음에 다 나아서 나온 너를 상대로 할 때는 이미 다 끊어놓은 뒤일거다!! 각오하라고!!"
짜증섞인 마지막 멘트와 함께 돌아가겠다는 듯이 돌아선 나타는, 창문을 통해 나가려다 말고 잠시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주머니 중 하나에 손을 넣더니, 그대로 무언가를 거칠게 꺼내들어 그걸 쳐다보고 있던 세하에게 던졌다.
"...이 이거 뭐냐?"
"네 것 아니냐? 칠칠치 못하게 흘리고 깨먹고나 다니지 마라. 하여튼 짜증나는 자식..."
"...어엇... 야! 야 나타!"
아침에 깨먹었던 자신의 게임기와 동일한 게임기를 얼떨결에 받게된 세하. 놀란 나머지 급하게 나타를 불러보았지만, 나타는 이미 창문 밖으로 한참을 날아 사라진 뒤였다, 난감하고 당황스러움에 뒷덜미를 긁적이던 세하가, 문득 떠오르는게 있는 듯이 창가로 소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