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도 밥을 먹었다. 조용히. 어떤 불필요한 동작이나 소리도 없었다. 그저 밥을 먹기 위한 최소한의 손짓이, 홀로 앉아있는 식탁 위에서 구슬픈 춤을 추고 있었다. 흐느적, 흐느적.
"......"
혼자 앉은 식탁에, 평소에도 하지 않는 사소한 혼잣말을 지금 이 순간 이세하가 중얼거릴 이유는 없다. 다만 그런 평소에라도 무조건 챙겼던 것 중 그가 놓치고 있는게 있다면, 그건 밥을 먹는 와중에도 틈틈히 집중하던 게임이 옆에 없다는 정도.
건블레이드를 챙겨서 나왔다. 씻어낸 차원종의 피가 희미하게 울부짖는 것을 수시로 느끼지만, 그런 건 어짜피 안중에 두지 않았다. 이미 그에게 찾아온 가슴 속 메아리가 그것을 덮어버린 것이다.
세하는 건블레이드를 꽉 쥐었다. 다시 찾아온 아픔을 견디기 위한 작고 격렬한 몸부림이었다. 떨려오는 건블레이드에 고통이 녹아들어갔다. 주체하지 못할 감정이 가끔 홍수처럼 밀려오는, 지금같은 순간에는 건블레이드에 희미한 불꽃마저 느껴지곤 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세상 가장 살벌하고 짜증나는 라이벌이자 또한 둘도 없는 우정의 주인공을 떠나보낸 것을 받아들이지 못한 자의, 흔들린 감정의 파편 중 일부였다.
쓸데없는 일이었다. 아니, 결코 그러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었다. 애초에 그렇게 떠나버렸어도 될 놈이 아니었다. 절대 평소같지 않던 그 때였지만, 그 곳에 관련된 건 분명 그가 아닌 나였다. 쓸데없은 참견으로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길로 원치 않는... 아니 어쩌면... 아니다. 내가 아는 그 놈은 절대 그럴리가 없다는 걸 상기해야만 한다. 적어도, '내가 아는' 그 놈이라면.
떠나보내지도, 떨쳐낼 수도 없는 생각들을 애써 뒤로한 채 세하는 앞으로 걸어갔다. 애써 게임기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또 순간 힘이 풀리며 게임기를 손에서 놓친다. 디스플레이에 금이 가버리고 말았다. 아, 실수를 해버렸다. 세하는 게임기를 줍기 위해 허리를 숙였다. 그리고 무릎도 굽혔다. 손도 바닥을 향해 뻗었다.
그리고 그대로 엎어졌다. 게임기를 손에 쥐지 못한 채, 허무하게 엎어졌다. 깨어진 디스플레이의 금 사이로 견디지 못한 슬픔을 담은 물방울이 떨어졌다. 뚝, 뚝, 뚝. 괴로움에 앙다문 입술로, 차마 입밖으로 내기도 힘든 그 말을 숨죽여 안으로 품으며 세하는 흐느껴야만 했다.
그 날은 별 일 없는 하루였다. 온갖 것이 짜증나는 일상이었을 뿐이었다. 뭐, 언제는 그런 짜증이 없었겠냐라는 물음이 들어온다면... 그래 뭐 그렇다고 쳐줄 수는 있겠다 싶었다. 언제까지 이런 지루하고 짜증나는 일상을 반복해야할지 알 수가 없는 것이 문제였다. 그를 귀찮게 하는 것은 너무나 많았다. 어느 하나 자신의 뜻대로 되는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의지를 배제당한 삶 속에 한 줄기 푸른 가지가 찾아왔다. 가지에 달린 잎사귀는 생각보다 뜨거웠고, 가시들은 날카롭고 남을 어떻게든 밀어내고자 했지만, 그는 그것을 만지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불타고 상처입는 나날이 반복되고 마음이 온통 멍들어가는 기분을 감출 수 없었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이것은, 속박당한 삶을 살아야하는 그에게 허락된 유일한 자유였다.
그 날의 사고(라고 버러지놈은 생각할지도 모른다)는 결코 사고가 아니었음을 고백한다. 물론, 그 놈은 이 이야기를 듣지 못할 것이다. 왜냐면, 이젠 너무 먼 세상에 떨어져버린 관계니까... 라고 설명하면 되겠나? 그것은 나의 자유에 대한 열망을 깊이 새긴 채 뛰어든, 처음이자 마지막 돌진이었기 때문이었다.
후회라... 그런게 있을리가 없지 않나? 인간들의 사회 속에서, 낙인은 결코 돌이킬 수 없는 족쇄가 되어 영원히 나를 괴롭힐 것이 분명하다. 예전부터 지금까지 단 한 순간도, 나는 너와 같은 최소한의 사람다움도 인정받지 못했다. 뭐, 물론 그럴만 했다고 그들은 부르짖겠지만, 낙인을 빌미로 삼아 나에게 인간 이하의 취급을 일삼고 그런 쓰레기같은 행동을 강요해오던 놈들의 손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내가 무엇을 가릴 처지였겠냐는 반문을 나는 하고 싶을 뿐이다.
그게, 그리고 너를 향한 마지막 인사이자 고백이다. 너라는 버러지 자식이 뭐라고 나를 이렇게 만들어버렸는지는 모르겠지만, 난 떠나서도 아직도 이해하지 못한 이 기분 때문에 널 그렇게 살려두고 혼자 가버렸으니까.
그가 없고 얼마 지나지 않은 날, 사기그릇을 들고 어느 강가로 나오는 검은 정장의 사내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의 친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애초에, 보일리도 없고 보여서도 안 되는 것이었으니 그다지 신경쓰지는 않는다. 그는 허공에 다리를 꼬고 턱을 괴었다. 희고 고운 가루가 그릇에서 천천히 흩뿌려지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 자신도 자신의 속에 저렇게 희었던 게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곱고 흰 가루가, 한참을 날아다니다 사뿐히 강물에 누웠다.
그리고 강물이 흘렀다. 강물과 함께 눈물이 흘렀다. 쓸데없는 눈물이 흘렀다. 떠나야할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또 그랬다. 끝내는 자유롭게 세상을 등졌으니 이제는 됐노라고 생각했지만, 어쩐지 차오르는 마지막 감정을 추스를 길은 없었다. 하지만, 이대로 지체할 수는 없는 것이 또 아니겠나... 하는 생각과 함께 그, 나타는 땅을 등졌다. 어디선가 구슬픈 흐느낌이 들려오는 듯 했지만, 애써 무시하며 날아올랐다. 마지막은, 언제나 그렇듯이 가슴아픈 허무함을 품고 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