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어암... 피곤해 죽겠네..."
졸리고 피곤한 눈과 몸을 이끌고 집으로 되돌아온 세하. 최근들어 잠잠해지는가 싶던 차원종의 출현이 갑자기 빈번해진 탓에 편히 쉬지도 못 하고 차원종 제거 활동을 벌여야만 했다. 그 덕분에 오늘도 꽤 늦은 저녁시간에서야 간신히 집에 돌아와 그대로 소파에 엎어지고 마는 것이다.
"으우으... 가만 보자, 아까 세이브했던 곳이..."
그리고 소파에 엎어지자마자 꺼내는 것은, 역시 게임기이리라. 꽤 오랫동안 작전에 투입돼 차원종들에게 시달린 탓에 극도로 피로하고 짜증나기 짝이 없었지만, 그래도 그런 세하한테 위로와 휴식이 되어줄 친구는 게임 이상의 것이 없었으니.
하지만 세하에게 있어서 피곤하고 짜증나는 존재가, 차원종 뿐만아니라 무려 이 집 안에도 있었다는 사실 또한 간과할 수 없...
"왕! 버러지! 왕왕!"
설명하다 말고 대사가 치고 들어와버렸지만 어쨌든, 설명충 계속 등판하자면, 세하의 편안하고 안락한 휴식을 방해할 존재가 이 집에도 있...
"왕왕!! 으르릉... 왕!"
에잇...!
"깨갱! 끼이잇.... 끼이잇... 끼히잉..."
...다는 사실이 중요했다는 정도겠다. 세하가 집에 들어왔다는 걸 눈치챈 개같은(...그런 나쁜 의미는 아니고) 귀와 꼬리가 달린...
"으앗... 야 나타 너 지금 뭐햐는거야!"
나타라고 불린 이 놈이 세하에게 와락 달려들어 덮쳐버렸다. 덕분에 몰두하던 게임에서 눈이 떨어지고, 무척이나 하드코어한 레이드를 달리고 있던 세하의 캐릭터가 허무하게 녹아버렸다. 울컥 짜증이 솟구친 세하가 나타를 번쩍 들어다 툭하고 옆에 던져놓고는,
"아, 참 이거... 가만있어! 나 이거는 꼭 마쳐야돼!"
라고 나타에게 명령을 내렸다. 세하의 짜증섞인 명령에 나타는 말을 잘 듣고 그 자리에 가만히... 있을거라고 생각되지 않는게 왜 당연한 느낌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역시나
"왕왕!! 놀아줘! 심심하다고!"
자기 심심하다는 이유로 레이드에 집중한 세하에게 또다시 민폐를 끼치고 마는 것이었다. 덩치도 작지 않은 녀석이 덮쳐드니 세하가 당해낼 재간이 있을리 없었고, 그대로 게임기가 툭 떨어져 나뒹굴었다. 인내심의 한계와 교대하기로 한 세하의 분노가 터져나왔다. 그대로 나타를 확 집어들어 거실에 내팽개친 세하가 벌떡 일어나 나타에게 화를 버럭 냈다.
"아이... 이런 XXX같은... 오늘 과자는 없는 줄 알어!"
레이드에 실패한 온갖 짜증을 나타에게 털어낸 뒤 방으로 들어가는 세하를 잠깐 기죽은 표정으로 쳐다보던 나타가, 이내 표정을 싹 바꾸면서 언제 그랬냐는듯이 바로 세하에게 달려가서는 다리를 붙잡고 '끼잉'대면서 놓아주질 않았다. 자기도 뭔가 잘못됐다는 걸 아는 지는 몰라도 애교라도 부려보겠다는 심산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행동이 오히려 독이 될 거라는 생각은 애초에 해볼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짜증이 오를대로 오른 세하는 그런 나타를 매몰차게 툭 걷어차고는 방문을 쾅 닫아버렸다. 뭔가 잘못 건드렸다는 걸 그제서야 제대로 깨달았는지, 나타는 그렇게 얼마간을 소파 옆에 쭈그려 앉아 시무룩하고 있어했다.
하지만 세하에게 있어서 피곤하고 짜증나는 존재가, 차원종 뿐만아니라 무려 이 집 안에도 있었다는 사실 또한 간과할 수 없...
그렇게 한참을 가만히 있던 나타가, 문득 세하가 두고 간 게임기를 발견했다. 얼마나 짜증이 심했으면 그 좋아하던 게임기마저 툭 던지고 방으로 들어가버렸을지 싶은 생각이 문득 드는 나타가, 떨어진 게임기를 입에 물고는 조용히 세하의 방 앞으로 가서 조용히 꼬리를 살랑이며 엎어졌다.
그 무렵쯤 세하도 적당히 화가 식고 평소같은 모습을 되찾아가면서,
"아, 게임기."
방문을 열고 나서자마자 본 것은 게임기를 조용히 문 채 엎어져 꾸벅꾸벅 졸고 있는 나타였다. 그래도 자기 딴에는 신경쓴다는 의미로 이렇게 챙겨라도 온 것 같기도 하니 이미 어느 정도 감정이 누그러진 세하로서는 마냥 피식하고 웃어줄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조용히 허리를 숙여서 나타의 상태를 살짝 본 세하가 게임기를 딱 집어드는 순간, 나타도 조심스럽게 깨어나서는 세하를 빤히 봤다.
"워을... 배고프잖아...!! 멍..."
"에휴... 그래 알았어 알았다고. 밥 줄게."
"왈!! 와오랑라ㅏㄹ!"
역시나 많이 배가 고팠던 모양인지 밥을 주겠다는 말이 즉각적으로 반응이 나오는 나타였다. 관련도 없는 짜증에 시달렸던 나타에게 살짝 미안했던 세하가 그대로 괜찮게 먹을만한 것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와왕!! 냄새가 좋다 버러지!"
"가만 있어. 금방 줄테니까."
"왕! 와왕!! 왈!!"
냄새만 맡아도 좋은지 폴짝폴짝 뛰는 모습이 어딘가 우스꽝스럽기도 했다. 애초에 세하가 거둬들이기 전에는 제대로 뭘 먹질 못 했던 아이였기 때문에, 사실 세하가 뭘 그냥 대충 휙 던져주기만 해도 나타에게는 언제나 진수성찬 행복한 식탁이었다. 그렇게 세하가 내온 밥을 게눈 감추는 후루룩 순식간에 먹어치운 나타가 기분이 좋다는 듯이 설거지를 하는 세하의 다리로 다가와서 얼굴을 부비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나타가 귀찮기는 해도 그냥 적당히 봐주고 넘어가는 세하였다.
밥을 다 먹고 슬슬 시간이 늦기 시작하는 저녁에, 세하가 소파에 앉아 TV를 보고 있었다...는 언제나 그렇듯이 게임방송이긴 했다. 이 시간이면 어김없이 열리는 신작품평회 방송에 몰두하던 세하의 곁으로, 조그만 공 몇 개를 가지고 놀던 나타가 심심하다는 듯이 공을 들고 세하에게 다가왔다.
"버러지! 놀아줘! 심심해! 왕왕!"
"...으응? 뭐라고?"
"왕왕!! 으르르르... 놀아줘!"
"어 그래? 잠깐만, 그 공 좀 줘봐."
"왕!! 싫어! 심심해!"
"아이 참, 그걸 줘야 놀던 말던 할거 아니야?"
"...워...울..."
"자 그럼, 이 공을... 이렇게... 자! 가져와!"
나타에게 받아든 공을 거실과 이어진 부엌 구석으로 세하가 안전하게 던졌다. 이제 나타는 또 호들갑을 떨면서 공을 가져올 것이다. 역시나 후다닥 뛰어가서는 공을 홱 잡아다가 암전히 가져오...는가 싶던 나타가 갑자기 세하 앞에서 가져온 공을 가지고 망설이기 시작했다.
"...뭐해. 이리 줘."
"싫어."
"응?"
"싫어! 내 공!! 으르릉..."
"아, 얘 또 이러네... 아 됐으니까 그만 두고 그냥 혼자 놀아."
"크으응... 놀아줘! 버러지 놀아줘! 왕왕!!"
"아 진짜, 이 멍청이가 공도 안 주면서 놀아달라면 뭘 어떻게 하라고!!"
평소와 같은 막무가내식 행동의 나타에게 짜증이 나는 바람에, 세하는 그냥 나타를 무시해버리기로 결정을 했다. 하지만, 그보다 나타의 움직임이 조금 더 빨랐다. 폴짝 세하에게 뛰어들더니 그대로 그 무거운 몸을 세하의 품에 안겨놓고는 스르륵 부비기 시작하는 것이다. 방송에 집중하지도 못 하게 방해만 당하는 게 신경쓰이긴 했지만, 그래도 결국 세하는 나타를 생각해서 품을 내어주기로 결정했다.
기분 좋다는 듯이 그르릉거리는 나타를 얹어놓은채 흐르던 시간이 서서히 자정을 향해갈 무렵, 세하도 나타도 슬슬 제대로 졸린 기색을 보이기 시작했다. 굳이 그렇게 밤 늦게까지 TV를 보고 있을 이유는 없었기 때문에(구체적으로는 게임을 해야하기 때문에), 세하는 슬슬 나타를 조심스럽게 들어올려 거실에 있는 그의 잠자리에 묵직하게 얹어놓았다. 개를 닮아놓곤 귀엽게 사람말도 섞어가면서 쓰는 이 놈이 도통 이해가 안 되는 것은 맞았지만, 그런 것과는 별개로 이 대책없이 활달하고 자존심 센 척하는 여린 놈을 함부로 다른 잣대를 들이밀기도 안 될 짓이기도 했다. 이래저래 복잡한 생각을 해봤자 별로 도움이 될 게 없다는 결론에 이른 세하가 방으로 들어가기 위해 걸음을 옮기던 찰나,
"크어음... 버러지."
"...뭐야? 안 자고 있었냐?"
"그, 그래. 안 자고 있었... 크으응..."
"빨리 자. 밤 늦었어."
"그, 놀아줘서 고맙다."
"...뭐?"
"크르릉... 두 번 말 안 할거다."
"...푸흣... 난 또 뭐라고, 잠이나 빨리 자둬."
뭔가 어색한 말을 나타로부터 들은 것 같았지만,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려니 뭔가 찝찝했다. '그래 뭐'하는 심정으로 나타에게 다가가서는 한 번 스윽 쓰다듬어줬다. 이제는 진짜로 잠든 것 같으니 가만히 그를 두도록 하고 세하는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잠든 나타 말고는 정적만이 감도는 조용한 거실, 조용히 홀로 잠든 나타의 등쪽으로 베란다 창 너머 날아든 은은한 달빛이 내려앉아있었다. 달과 별이 수놓인 하늘 아래에서도 평범한 일상이 즐겁게 춤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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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amMa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