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그러운지 아닌지 모르겠는 햇살이 내리쬐는 아침, 주방은 학교를 가야할 아들을 위해 아침식사를 준비하는 어머니의 분주함으로 가득하다. 매일 돌아오는 아침이 뭘 그리 특별하겠냐마는, 어머니에게는 오늘 아침 아들의 시작을 무엇으로 열어줄지에 대해 고민하는 의미있는 일과 중 하나인 것을.
바쁜 주방일을 하시던 어머니가 등 뒤에 있는 시계를 보고는 아들의 방에 한 마디 쏘아붙인다.

- 세하야, 안 일어나니?

물론, 응답이 있을거라 기대한 적은 최근 몇 년새 단 한 번도 없다. 늘 그랬듯 아침 기상시간은 전쟁이었으니까.
문을 열어젖히고, 늘 비슷한 자세로 엎어져 누워있는 아들을 만난다. 한 손에는 게임이 아직 켜진채 배터리 충전기가 연결된 게임기가 포근하게 안겨있었고, 얼굴은 베개에 엎어진 채 미동도 없이 잠들어있었다.
늘 똑같은 아침 풍경, 그리고 늘 똑같은

- 이. 세. 하! 안 일어날래!?

'꿈틀', 그제서야 서서히 꿈틀대는 모습이다. 새벽 내내 무엇을 했을지 뻔한 상태인데 어느 어머니가 이런 고함소리 한 번 안 치고 넘어가실까.
조금의 움직임을 보이던 이세하가 다시 침대를 정적으로 만든다. 이것도 역시나다. 한 번에 일어나는게 기적일 뿐. 그리고 이어지는 맑고 청량한

- 짝!
- 아악!

세하 어머니는 등짝 스매싱을 날렸다! 어머니의 트루 데미지 효과는 굉장했다!
잠결에 꿈틀대던 몸뚱이가 벌떡 일어나는 것이다. 늘 비슷한 기상 패턴이지만 단 하루도 익숙해질 수 없는 아픔은 세하가 아침을 상쾌하게 시작하기를 방해하는 불편한 점 중 하나다.

- 일어났으면 아침 먹고 학교 가.
- (하품과 함께) 후아암... 네.

반쯤 뜬 눈으로 아침을 먹고 씻고 가방과 게임기를 챙겨 세하는 등교길에 오른다. 어제까지만 해도 줄기차게 쏟아지던 빗줄기들이 새벽 사이에 다 잠잠해지고 맑은 하늘이 드러났다. 등교길 여기저기에 있는 웅덩이에 비치는 햇살이 이세하의 졸린 눈에 수시로 묠니르를 꽂는 느낌이다(물론 당사자는 그게 무슨 느낌일지 잘 모를테지만). 항상 졸음과 싸우면서도 지각은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지각이라도 했다간 부모님께 연락이 가는게 기본이고, 그 다음은... 자세한 내용은 생략한다.
몰려오는 피곤과 졸음을 견뎌내고, 어떤 상태로 걸어나갔는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2학년 C반 교실에 도착한 이세하. 잠시 두리번거려보니 역시나 서유리는 오늘도 늦는 모양이다. 창가의 자기 자리로 도착해 뒤를 돌아보니 피곤에 찌들어 충혈된 눈과 다크서클을 가진 다크포스의 한 사내가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게임기를 붙잡고 있었다.

- 후아암... 석봉아 안 피곤하냐?
- 어음... 아니야 지금 이 정도면 괜찮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 (힐끗) 너 벌써 여기냐? 야 너무 혼자 달리는거 아냐?
- (축 처지는 목소리로) 그거야 네가 같이 던전을 돌다가 갑자기 자버렸으니...까...
-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역시... 넌 게이머들의 귀감이야.

여느 날처럼 별다를 바 없는 하루다. 간간히 차원종 습격에 대한 소식이 들려오지만 어른들이 흔히 말하는 피라미같은 놈들이나 가끔 등장한다고 한다. 당장은 클로저라 해도 나설 필요도 없고 나설 생각도 없다. 너무... 힘들었다고나 할까.

그동안 있었던 일련의 수많은 사건들을 지나보내고 나서, 세하는 한층 더 성숙(한 게임 실력을 보유)해졌다. 신서울 전역을 누비며 수많은 차원종들을 맞닥뜨린 탓에 한동안 피곤에 찌들어 지쳐있었지만, 그래도 금방 회복해서 했던 첫 일이라곤... 역시 게임이었다.

= 그래도 좋잖아? 열심히 차원종 레이드 한 공로도 인정받아 돈도 많이 받았으니 게임에 더 투자해야지!

당연스럽게도... 지당한 생각이었다.

- 자, 다들 앉아라.

왁자지껄하던 아침의 교실이 우당탕 소리와 함께 쥐죽은듯이 조용해졌다. C반 담임선생의 등장이다.

- 오늘도 아침부터 다들 한바탕 하느라 정신 없는거냐? 엉? (드르르륵, 쾅! 우당탕탕!) 야 서유리! 넌 지금 늦게 오는 것도 모자라서 왜 아침부터 난리법석이야? 책상 부서져 임마!

그럼 그렇지 싶은 순간이다. 왜 서유리가 교실에 없나 했더니 당연히 지각이다. 위상력에 눈 뜬 뒤 클로저로서 수많은 작전을 펼치고 전장에서 살아돌아왔지만, 주체할 수 없는 10대의 혈기는 늘 여전해서 저렇게 가끔 감당하기 힘든 사고를 친다. 이미 교실 바닥에 발자국이 푹 패인 자국을 보자하니 그걸 바라보던 이세하는 한숨부터 나온다. 나뒹군 책상 몇 개를 서유리가 급히 주워서 정리한다.

- 또 교실 난장판으로 만들고 지금 뭐하는거야? 그러고도 클로저야? 고생했으면 고생한만큼 보람이라도 있어야지 이렇게 힘 조절이 안 돼서야 원...
- 죄송해요 선생님! 그치만 오늘 너무 피곤해서 늦잠을 자는 바람에 급하게 달려오느라 그런걸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구요.
- 에휴 됐다 됐어. 너 늦잠자고 지각하는게 하루 이틀이냐? 어찌된게 클로저가 되기 전이나 되고 난 후나  달라진게 없냐 너는. 자 됐고 다들 앉으면 긴히 할 얘기가 있으니 그런 줄 알어.

가벼운(?) 서유리의 지각 소동 이후로 담임선생은 이 말을 남긴 뒤 다시 교실 밖으로 나갔다. 또다시 교실이 웅성웅성해지는가 싶더니, 담임선생이 누군가를 데려오...는데

- (?!?!) 어엇? 너는?
- (?!?!) 야 뭐야! 너 여기 왜 온거야 너?!

세하와 유리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이 순간 그가 여기에 있을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너무나 깊이 인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가 자기네 또래였을 것이라는 건 처음의 만남을 통해서 대충 짐작은 했었는데, 그렇다고 이런 장소에서 이런 신분으로 같이 만나게 될 것이라고는 단 한 순간도 생각해보지 못한만큼, 당혹스러운 일이었다.

- 자, 너희 둘은 조용히 하고, 자기소개부터 해라.
- 나타라고 한다. 불만있나?
- 학생, 말 좀 곱게 쓰라고 부탁했잖냐.
- 왜? 내가 내 인사 하겠다는데 왜 신경 써.
- (...고개 돌리며) 하아...

담임선생도 한 숨이 절로 나올만큼 당혹스러운, 받아들이기 싫은 현실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다른 애들은 영문도 모르겠다는듯이 나타를 쳐다보고 있었지만, 세하와 유리는 교탁 앞에 서있는 저 단정한 교복차림의 삐친머리 소년을 입이 멍하니 벌어진채 한참을 쳐다보고 있었다.

대공원에서의 악연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싶다. 같은 클로저인 자신들의 목숨마저 위협했던, 적으로 만났던 자를 교실에서 학교 친구(?)라는 위치로 만나게 되다니, 도대체 유니온과 벌처스는 이 범죄자를 어떤 목적으로 이런 무방비한 교실에 던져놓는 것인지 아무리 생각해도 당췌 이해할 수 없었다.

나타는 간단한 자기소개 이후 누구에게도 관심 없다는 듯이 흘기듯 교실을 둘러봤다. 그리고 세하와 유리가 붙어있는 자리쪽을 보더니 둘을 향해 씨익 미소를 짓는 것이 아닌가? 세하와 유리는 동시에 돋아오르는 소름을 느꼈다. 다만,

= (세하, 유리) 살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전에 대공원에서 만났던 때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나타의 위상력도 비교적 안정돼있는 상태였고, 비록 상황에 따라 급변할 수 있다고는 해도 지금 당장은 그 전에 보았던 모습과는 다르게 약간 차분한 인상을 주고 있었다.

세리둥절 유리둥절 하는새 간단한 소개가 끝나고 나타의 자리가... 비어있던 석봉이의 뒷자리로 결정나버렸다.

= (세하, 유리) !!!!

교실 창가 옆 나무에 앉아있던 새 한 마리가 푸른 하늘로 날아올랐다. 평화로운 교실에 점점 알 수 없는 음습함이 찾아들고 있었다.



- To be continued


Posted by SamM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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