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방까지 들고 사라진 나타는 역시나 모든 학교 수업 일정이 끝날 때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학교로 돌아온지 고작 이틀만에 벌어진 사건으로 검은양 멤버들은 머릿속이 복잡해져서 그 이후에 있었던 수업내용들을 단 하나도 제대로 귀담아듣지 못한 채 학교 일과를 마쳐야만 했다.
검은양팀이 나타에 대한 이야기를 전달받은 그 날 그 자리에서 함께 들은 바에 의하면 나타는 벌처스 소속 팀에서 나와 유니온의 지원을 받으며 혼자 생활하고 있다고 했다. 무슨 이유로 나타를 혼자 생활하게 내버려두는지 그 속내를 도통 알 수 없는 것이지만, 본인이 원한다고 했으니 그 범위까지는 맞춰주기 위해 유니온이 신경써주는 것같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일이 벌어진 이상 기존에 나타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이미지를 고려할 때 결코 긍정적인 마인드를 유지할 방법은 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나타에 대한 생각을 조금 하다가 문득 걸려오는 전화,
- (뚜르르르르) 어, 슬비야.
- 세하야! 지금 유정 언니한테 연락이 왔어. 나타가 학교를 이탈한 뒤에 갑작스러운 습격을 받고 쫓기고 있대!
- ...뭐, 뭐라고? 그게 무슨 소리야?!
- 나도 지금 정확한 정황은 모르겠어. 한강변 일대에서 너무 노출이 심한 상황이라 자칫하면 위험해질 수도 있는 상황인 것 같아.
- 알았어, 지금 바로 가볼게.
아닌 밤중에 홍두깨같은 소식에 세하는 가지고 있던 건블레이드를 꺼내들고 급히 나타가 쫓기고 있다는 강변길로 이동했다. 학교에서 멀지 않은 거리에 있는 곳이니만큼 금방 도착할 수는 있었지만, 나타의 도주 실력도 아주 뛰어나서인지 쉽사리 그를 찾기가 어려웠다. 그러던 중 세하는 기존에 강변길에 먼저 도착해있던 슬비와 유리, 미스틸테인을 만났다.
- 세하야! 이 쪽이야!
- 어, 슬비야. 지금 막 와서 둘러보던 참이야. 어떻게 됐어? 나타는?
- 아직 안 보여. 나타를 추적하는 사람들도 동일한 위상능력자인 걸로 예측되고 있어. 그래서 지금 나타가 더욱 더 위험한 상황에 처해있는데다가, 나타는 입고 있는 교복 때문에 위상력을 공격에 사용할 수 없는 상태라서 오래 버티지 못할거야.
- 제길... 일단 다들 핸드폰 가지고 있잖아. 흩어져서 찾아보는 수밖에 없겠는걸?
- 알았어 세하야. 테인이는 유리랑 같이 붙어서 움직이도록 하고, 어? 제이 아저씨?
- (슈우웅, 탁) 어이쿠 허리야... 아, 그래. 무슨 일이 터졌다고는 들었어. 여기서 이렇게 머뭇거릴 새가 있나? 빨리 찾아내봐야지. 다들 몸조심하고 가자!
검은양 팀이 모두 흩어졌다. 자신의 힘을 온전히 활용할 수 없는 제약에 걸려있는 나타에게 지금은 굉장한 생명의 위협이 되는 순간이었다. 분명 그를 다시 세상으로 끄집어낸 유니온도 나타에게 이런 운명을 안겨주기 위한 것은 아니었으리라. 슬비에게 지시받은대로 도심지 방향으로 향한 세하는, 급하게 움직인지 얼마 지나지 않아 건물 옥상 위를 바쁘게 뛰어다니는 실루엣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나타로 추정되는 소년이 그 뒤를 쫓는 추격자 3명에게 위협받고 있었다. 위치는 신논현역 근처. 건물 아래에는 수많은 시민들이 저 공중 위에서 벌어지는 일을 깨닫지 못한 채 여유로운 퇴근길을 맞이하고 있었다.
- 제길... 이 개같은 놈들을 눈앞에 두고도 도망다녀야된다니... 제기랄!!!
계속된 방어와 도주로 지쳐가던 나타가 난데없이 짜증섞인 고함을 질렀다. 나타에게는 지금의 이 위협이 그렇게 없던 일이었진 않지만, 그래도 과거에는 그런 위협에 어느 정도 대항할 수 있는 힘과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유니온에 의해 자신의 능력이 상당부분 묶여있는 탓에 지금은 공격적인 행동에 힘을 쓰려고 할 때마다 오는 전기 통증 때문에 이따금씩 행동에 제약이 오고, 그로 인해 계속해서 추격자들에게 유리한 상황을 내줄 수밖에 없었다. 가끔씩 건물을 뛰어넘을 때 통증이 오면, 짜증스럽게도 저 길바닥으로 떨어져 험한 꼴을 당해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나타에게 전에 없던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조금씩 심어주고 있었다.
- N-9 보고, 전방 120m 목표물 지속적으로 저항하며 도주 중. 현재 N-11, 14 요원과 함께 3방향으로 목표물을 몰아 목표지점에 도달시킬 예정. 지원은 필요 없... 크앜!
지휘부와 무선 통신을 시도하고 있던 N-9이라는 요원이 허공에서 불의의 습격을 받았다. 갑작스러운 기습에 정신을 잃은 N-9은 천천히 신논현 거리 한복판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순간 당황한 나머지 두 요원 중 한 명이 N-9을 구출하기 위해 몸을 돌리던 사이
- 흐아아아아압! 받아라!
이세하의 폭발 공격이 N-11의 어깨 근처를 스쳤다. 순간 당황해 준비가 미흡했던 N-11은 세하의 폭발공격으로 어깨에 부상을 입고 주춤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 으라앗! 촤! 아다다다다다다!
요상한 기합과 함께 N-11의 등 뒤를 무서운 속도로 타격하는 손놀림이 보였다. 연락을 받은 제이 아저씨가 제일 먼저 도착한 것이다. 뒤따라온 슬비와 테인은 허공 위에서 N-14와 교전을 벌이고 있었다. 유리는 지상으로 낙하하던 N-9를 건져서 멤버들이 있는 건물 옥상으로 착지했다. 나타에게 위협을 가하던 추격자 세 명은 예상치 못한 기습에 모두 확실한 저항 한 번 해보지 못하고 제압되었다.
- ...휴, 다 됐구만. 그래, 슬슬 이 사람들 한 번 심문을 해봐야하는건가?
- 일단, 유정 언니께 상황 보고는 다 마쳤어요. 지금 유니온에서 조사를 위한 요원을 급파하고 있다고 해요.
- 그래? 그럼 뒷일은 조사하러 올 사람에게 맡기고 우리는 좀 쉬어도 되는...
그리고 그 순간, 제압되어 옥상에 묶이거나 널부러져있는 추격자들의 몸에서 문득 삑삑하는 카운트 소리가 나기 시작하더니 그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정신을 잃지 않은 추격자의 눈이 공포에 질린 채 갑작스러운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 ...다들 도망쳐!
제이의 외침과 동시에 검은양 멤버들이 주변 건물로 흩어졌고, 바로 다음 순간,
- 콰앙!
검은양 멤버들이 모여있던 그 건물 옥상에 묶인 추격자들의 몸이 동시에 폭발했다. 갑작스러운 큰 폭발의 여파로 건물 옥상이 파괴되고 그 잔해가 주변으로 휘날렸다. 지상에는 갑작스러운 폭발로 인해 사람들이 우왕좌왕하며 여기저기로 대피하고 있었다.
폭발로 인한 후폭풍이 잠시 잠잠해진 뒤,
- ...어이! 다들 괜찮아?
- 네, 덕분에요.
- 이런 제기랄. 짜증날 정도로 귀찮은 상황이로군. 주어진 추격 임무를 실패했다는 이유로 사람을 폭발시켜 죽게 하다니, 누구의 짓인지는 알 수 없어도 정말 속이 다 뒤틀리는 놈들이군.
그리고 그 때, 유니온에서 급파된 조사팀이 도착하여 폭발이 있었던 현장을 허망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 어이, 유니온 양반. 이 놈들 죽었다고, 그것도 아주 잔인하게. 흔적을 보면 무슨 상황이 있었는지는 알테고 말이지.
- ... 또 그들이군요.
- 조사팀 아저씨, 짐작가는 데가 있으신건가요?
- 아, 네. 이세하 요원. 일단은... 여러분도 전해들으셨었겠지만, 나타의 처지를 이렇게 만든 배후세력이 존재했다는거 기억하시겠죠? 일단... 유니온 측도 그런 세력이 존재하고 있다는 정보는 알고 있지만, 그들의 방식이 매우 잔인하고 비정하기 짝이 없다보니... 이렇게 임무에 실패하고 붙잡힌 요원들의 경우에는 살려두지 않고 가차없이 이런 식으로 끔찍한 죽음을 맞이하게 하죠. 그런 탓에 그들의 정보를 캐내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이번에도 최대한 빨리 도착해서 그들의 죽음을 막아보려고 했지만, 역시나 이번에도 실패로군요.
- ... 이 자들이 나타와 관련되어 있고, 나타를 계속해서 노려서 이런 일을 벌인거란 건가요?
- 네, 일단 현재로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개연성 있는 추측이에요. 좀 머리 아픈 일이긴 합니다.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굉장히 어렵죠.
- ......
- 잘 아시겠지만 나타군을 다시 정상적인 위상능력자로 돌려보내주기 위한 과정 중에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건 절대로 좋지 않죠. 사실 그런 이유가 있어서 나타군을 여러분과 함께 하도록 한 것이기도 합니다. 물론, 무작정 강요한 건 아닙니다. 나타 본인도 이런 결정이 있기까지 본인의 의사표현이 있었기도 하고요.
- ... 네? 나타가 직접 우리 학교에 오기로 했었다는 말씀이신가요?
- 그 뿐만 아니라, 이세하 요원이 있는 반으로 가겠다고도, 했었으니까요.
- (일순간 표정이 일그러지며) ...나타가 그랬다고요? 도대체 무슨 이유로요? 그 자식 나한테 저번에 만날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짜증 섞인 말투로 위협밖에 할 줄 모르는 놈이 왜 날 찾은거래요? 저번에 못 낸 승부라도 내겠다는 심산인거에요? 또 그걸 곧이곧대로 받아준 이유는 뭔데요? 내 의사는 중요하지도 않은거에요?
- 이세하 요원, 지금 나타군으로 인해 느끼고 있을 요원의 불안함 이해하고 있습니다. 다만 한 가지 명심해야할 것이 있어요. 이거는 단순히 학생 한 명이 학교로 전입해 들어간 것이 아닙니다. 주지받았었겠지만, '작전'이에요. 검은양 팀에서 맡아서 진행해줘야할 일이라는 거죠. 물론 어려움이 따를 겁니다. 유니온에서는 여러분의 능력을 높게 사고 있어요. 신서울의 영웅이라는 칭호가 절대 거저 얻어진게 아니라는 건 여러분 스스로도 잘 알고 있을겁니다. 나타군에 대해서는 일단 우리 쪽에서 잘 수습해서 내일부터 다시 정상적인 학교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울 예정입니다.
- ......
- 일단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도록 하고, 저는 여기서 물러나도록 하겠습니다. 검은양 멤버 여러분 모두 오늘 수고하셨습니다. 그럼 이만,
그렇게 조사팀 요원이 떠나고, 폭발의 상흔이 남은 건물의 옥상 위에 남은 다섯 멤버들은 각자의 심란한 마음이 드러난 표정으로 우두커니 한동안 서있었다.
- ...나타는... 물론 일단 무사하겠죠? 아저씨?
- 응, 세하야. 마지막으로 쫓던 요원도 나타에게 근접하기 전에 나랑 테인이가 제압했어. 나타는 최대한 자신이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곳으로 잘 도주했을거야. 우리의 역할은 오늘 여기까지인 것 같아. 다들 수고했구, 오늘은 여기서 이만 흩어지자. 내가 유정 언니한테 보고해놓을게.
- 자자, 일단 다들 무사하잖아! 제이 아저씨도 갑자기 나와서 무리하긴 하셨지만(제이: 쿨럭쿨럭) 그래도 우리 모두 아저씨 말처럼 몸만 멀쩡하면 된거잖아. 뒷일은 슬비가 조금만 맡아주구, 나타 걱정 그만하고 우리도 빨리 쉬러 가자! 난 지금 집에 저녁밥이 식고 있다구...
- 그래, 다들 몸조심 했으니 그걸로 된거지. 빨리 쉬러들 가자고. 오늘 들렀어야 할 약재상도 이미 문을 닫았을 것 같은데... 어쩔 수 없겠구만.
- 저도 석봉이 형이 가르쳐주기로 한 게임 아직 덜 배웠어요! 빨리 가서 놀고 싶은걸요!
- ...테인아 다른 건 괜찮은데 그건 안 배우면 안 되겠니?
어쩔 수 없는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지고 말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에 대해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검은양 멤버들은 일단 뒷일에 대해서는 잠시 접어두기로 한 채 각자의 갈 곳을 향해 움직였다.
그리고, 그 무렵. 나타는 도망치던 몸을 잠시 한강변으로 옮겼다. 누구였는지 정확한 실루엣을 보진 못했지만, 그런 방식의 공격은 분명히 이세하였다. 그... 버러지같은 놈이 갑자기 와서 자신을 도와준 것이다. 자신에게 온갖 짜증을 유발하는 그 놈이...
- ...제기라아아아아아아알!
한 없는 분노의 외침이 강바람을 타고 하늘로 흩어졌다. 해가 거의 다 져가는 하늘에, 희미한 별빛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었다.
- 4화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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