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차원종들의 습격이 이어졌다. C급 뿐만 아니라 B급 차원종도 무더기로 쏟아져나오면서 강남 일대를 압박하고 있다. 특경대가 구축한 수비라인이 저 멀리서부터 천천히 붕괴되고 있었다. 검은양 팀의 세하가 맡은 지역에서도 밀려오는 차원종들의 군세가 끝없이 밀려왔다. 닥치는 대로 후려치고 폭발시키던 세하도 결국 사람인 것을... 지쳐가는 모습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하아... 하아... 언제까지 이렇게 버텨야만 하는거야!!"
마지막 사자후와 함께 차원종의 밭으로 끼어들어갔지만, 오히려 그런 마지막 호기가 위기가 된 것일까. 기세가 오를 대로 오른 차원종들이 세하의 곁으로 덮쳐들었다. 순간적인 오판으로 차원종 부대의 정중앙으로 뛰어들어버린, 이미 지칠대로 지친 세하는 차원종들의 즐거운 장난감이 되어갈 뿐이었다.
'젠장... 여기서 끝이야...'
"...버러지 같은 자식, 멍청하게 한복판으로 뛰어들어서 어쩌겠다는거야!"
그 순간 들려오는 목소리. 세하가 지쳐가는 몸을 뒤틀어 목소리의 방향을 보자, 긴급히 현장에 뛰어든 나타가 눈에 들어왔다. 지금까지 벌처스의 처리부대가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던 걸 생각해볼 때, 이건 분명히 나타가 단독으로 뛰쳐나온 것이 분명했다.
"자, 안겨! 다시 제자리로 돌아간다!"
세하에게는 더 이상의 선택권이 없었다. 나타가 시키는 대로 있는 힘을 짜내 안기자 나타는 접근해오는 차원종들을 모조리 물리치고 다시 무너져가는 방어선을 향해 뛰어들었다.
"...고마워"
"쓰레기 자식, 너 때문에 내가 이런 고생을 해야한다는거냐?"
"아, 미안하다... 미안하다고."
나타가 세하를 누인 채 차원종이 몰려오는 방어선을 쳐다봤다. 특경대만의 힘으로는 절대로 불가능한 군대 규모다. 지금까지 세하 혼자서 이렇게 버텨왔다는 것도 대단한 일이라고 해야할 정도다.
차원의 거대한 흐름 앞에 육체와 정신이 무너져내리는 와중에도, 단 한 순간 마지막 남은 힘을 짜내 최후의 결계를 쳐내고 쓰러진 아이.
"미스틸테인! 쓰러지지 마! 같이 갈 수 있어!"
"아, 아니에요! 다들 빨리 도망쳐야해요! 여기는 제가 맡을 수 있어요. 차원종을 없애는 건... 제 사명이란 말이에요!"
"그까짓 사명에 네 소중한 목숨을 바치지 마! 다른 사람들은 어찌됐던 넌 끝까지 그 사명만 바라봐야하는거야? 왜?!"
"......"
"미스틸!"
"세하 형, 그동안 고마웠어요. 전 지금까지 차원종들을 사냥하면서 사람들을 지켜온 순간들이 너무 행복했어요. 제 사명을 지켜왔다구요! 이제 와서 다른 사람들을 버리고 제가 여길 도망치면 우리가 사는 세상이 위험해질걸 미스틸은 알고 있어요! 전 마지막까지 싸울거에요. 차원종을 남김없이 사냥해서 사람들을 지켜낼거라구요!"
"미스틸! 그건 네가 돌아와서도 우리가 힘을 합쳐서 해낼 수 있는 일이야! 지금은...!!"
"이세하, 그만 둬."
"아저씨! 저 아일 왜 저렇게 내버려둬야하는데요?! 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요!"
'퍽', 제이의 가슴팍을 강하게 내리치는 세하다. 지하 연구소 플레인게이트, 차원의 간극이 무너져내린 공간. 그리고, 사명의 끝에 닿은 한 소년의 행복한 목소리가 울리는, 잔인한 운명의 종착지.
"나도... 정말... 받아들이고... 싶지 않단 말이다 이세하!!!"
'퍽', 이번엔 제이가 세하를 벽으로 밀쳐낸다. 이 광경을 보고 있는 슬비와 유리는 얼어붙은 채 그저 눈물만 흘릴 수밖에 없었다. 특히 슬비는 미스틸의 방향을 쳐다보지도 못한 채 경기를 일으키며 울음을 그칠 줄 몰랐다.
"잘 들어, 지금 이 차원의 간극이 무너지는 순간, 이 연구소와 건물, 신서울은 물론이고 세상이 무너져! 나라고 저 꼬맹이가 저러고 있는 걸 방치하고 싶은 줄 아는거냐?!"
"그러면 왜요! 왜 저 아이여야만 하는건데요!"
"...저 아이일 수밖에 없어."
"그러니까 왜요! 왜 미스틸이 저렇게 돼야만 하는거에요!!"
"...지금은 받아들여줘. 나도 미칠 것 같단 말이야! 네가 18년 전의 그 날을 알지 못한다면! 제발 그만! 그만 좀 애처럼 굴고 제발 좀 받아들여달란 말이야!!"
제이가 무릎을 꿇는다. 버틸 수 없는 아픔이 가슴팍을 찌르고 들어온다. 이 아픔, 평생 기억하고 싶지 않았던 그 아픔이 다시금 품 속으로 파고들었다.
이세하가 벽에 기대 쓰러지듯 서서 미스틸을 쳐다본다. 이미 미스틸의 몸은 천천히 분해되듯이 사라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몸 속에 잠자고 있던 가공할 힘이 차원의 간극을 서서히 메워가고 있었다.
한 아이의 무너짐이, 세상의 기둥이 되었다. 그리고, 아이는 웃었다. 세상 어느 누구도 지을 수 없는 환한 웃음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