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타의 소개가 끝나고 1교시가 시작하기 전, 교실을 급히 빠져나온 세하는 복도 끝 화장실로 달려가면서 전화 한 통을 걸었다.


그리고 그 무렵, 국가차원관리부 특수처리반 검은양팀의 관리요원 사무실

- 아, 됐으니까! 지금 좀 바빠요. 그동안 있었던 밀린 일들이 태산이라구요 태산! 커피나 한 잔 여유롭게 할 수 있는 시간이 아니라구요. 네? 30번이 지금 여기서 왜 나와요?!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니까요. 강남 일대가 쑥대밭이 되면서 제가 했어야할 일이 그동안 올스탑 상태였던거 아시잖아요? 할 말이 있어도 좀 나중에 해주세요 지금 바쁘니까. 아흐!! 좀 그만 좀요 지부장님! 끊을게요 이만. (철커덕) ...에휴 내 팔자야 ㅜㅜㅜ

늘 그렇듯, 샐러리맨 아닌 샐러리맨 같은 김유정의 하루는 고되고 지쳐가기만 하는 일상이다. 온갖 다크포스를 뿜어내는 서류더미 속에서 수많은 강남 사태에 관한 검은양팀 관련 자료들을 정리하고 보고하기 위해 눈코뜰 새 없이 분주하게 일하고 있지만, 아무리 본인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끌어내 발휘해도 감당할 수 있는 선이 있고 없는 선이 있는 법이리라. 사무실 한 켠의 창문은 커튼이 쳐져 있어서 간신히 커튼을 뚫고 들어오는 희미한 빛만이 사무실 바닥을 비추고 있었고, 책상 위의 스탠드는 언제 꺼져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참 오랫동안 열심히 김유정의 책상 위를 비추고 있었다.

그리고,

- (벨소리 -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머물고 있는 천춘인 줄 알았는...) 네, 관리요원 김유정입니다.
- 유정 누나! 이게 무슨 상황이에요?!
- 어, 세하야. 왜 그러니? 지금 누나가 많이 바쁜데?
- 아니 지금 우리 반에 나타가 왔다고요!
- 응? 낙타? 낙타라고?
- 아니 낙타 말고 나타요 나타! 우리 학교에서 작전할 때 공원 쪽에서 만났던 그 처리부대놈이요!
- 응? 뭐, 뭐라고?! 아니 걔가 왜 거기에 있어야 하는거지? 처리부터 소속이면 대외적으로 눈에 띄는 활동은 불가능하도록 제약이 모두 걸려있을텐데?
- 그러니까 제가 전화해서 누나한테 물어보잖아요.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구요! (그래요 언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 좀 해줘요!)(야 서유리 여기 남자화장실이야 너 여긴 또 왜 들어왔어!)
- (......) 잠깐만 기다려봐 세하야 지금 잠깐 짐작가는데가 있거든?

유정은 그 즉시 사무실 전화기를 들고 지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 (뜌루르르르르, 철컹) 네, 신서울 지부장입니다.
- 지부장님!
- 아 그래 유정씨. 드디어 맥주 한 잔 할 여유가 생긴겐가?
- 아니요! 그럴 여유는 애초부터 없었다구요. 물어볼게 하나 있으니 빨리 대답해줘요.
- 뭔데 그러나?
- 지금 세하한테 연락이 왔는데, 세하네 학교에 나타가 들어갔다는게 무슨 얘기죠? 아까 뭔가 저한테 말씀하려고 하시던게 있었던 것 같은데, 그게 설마 이건가요?
- 그러니까, 며칠동안 유정씨가 계속 바쁘다고 해서 내가 말할 타이밍을 자꾸 놓쳤단 말야. 너무 그렇게 단칼에 자르고 그러면 내가 뭘 어떻게 자네에게 전달할 수 있을거라 생각하나.
- ...아 알겠다구요. 그러는 지부장님도 좀 상대방을 배려해서 얘기해줄 순 없으신거에요? 계속 차 한 잔, 커피 한 잔 하자고만 말씀을 하시는데 안 그래도 바쁜 상황에 진절머리 날 것 같다구요! ...어쨌든, 설명 좀 해줘요. 무슨 상황이에요 이게?
- 알겠네 차근차근 설명하겠다고. 일단 좀 진정하고 심호흡 좀 해. 짧지만 중요한 내용이라고.
- ...
- 일단, 나타가 세하와 동갑인 젊은 소년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을테고, 나타군의 행적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전해들은 얘기가 있을걸세. 그렇지?
- 네, 대충은
- 일단 나타가 정신병력이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모두가 인정하고 있네만, 과거에 있었던 그 살해사건에 대해서는 여전히 광범위한 의문이 남아있었던게 사실일세. 그래서 먼저 1차적인 수습을 진행하기 위해 벌처스의 처리부대에 나타가 넘어가있는 상태이긴 했지만, 그렇게 격한 활동은 자제하도록 애기를 해놓았었네.
- 그래서요?
- 최근에 나타군에 대한 조사를 계속하던 중, 나타군이 어떠한 생명의 위협까지 느낄만한 외압에 의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었고 이에 우발적이고 계획되지 않은, 하지만 그 외압을 넣은 자에게는 철저히 계획된 잔혹한 사건이 발생하고 말았었다는 결과가 속속들이 드러나고 있다네. 나타군은 자신이 사람을 죽인 살인범으로 낙인찍혀 평생을 살아갈 것이라고 생각한 나머지 그간 검은양팀을 위협하는 말과 행동을 많이 했었지만, 이렇게 된 내용을 나와 유니온 측에게 나타군을 만나 얘기하고 설득한 끝에 어느 정도 그의 마음을 되돌리는 데는 성공을 해놓았네. 다만, 약간의 상처가 그 가운데 있었던 건 사실이지만.
- ...알겠ㅇ... 뭐라고요? 상처라뇨?
- 아, 별거 아닐세. 그저 그가 내지른 주먹을 반사적으로 팔로 막으려다 약간의 골절이 있었는데, 뼈가 붙는 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 같아서 대외활동은 자제하고 있는 편이기는 하지만...
- 그럼 지부장님은 괜찮으신거에요? 아니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아직 온전히 신뢰할 수 없는 상태일텐데 그런 아이를 대뜸 학교로 몰아넣다니요? 무슨 생각을 하시는거에요?
- 자자, 우리도 다 생각이 있어서 하는 말이네. 유정씨 자네는 나타군이 위험한 행동을 할 상황이 될 때쯤이면 그가 착용하고 있는 제어장비가 작동해서 수시로 전기적 충격을 준다는 건 알고 있을테지? 일단 아쉽게도 그 방법을 지금도 쓰고 있다네. 아마 나타군에게는 좀 괴로운 일일거야. 아직 그가 이러한 상황을 온전히 받아들이지는 못했으니까. 그래도 주변 학생들에게 그런 사실이 대놓고 눈에 띄지 않게 하기 위해 교복 속으로 장치들을 숨겨주는 작업을 했네. 조금 불편하겠지만 그가 감수해줘야할 부분이기도 하지. 지속적으로 심리 치료 및 상담도 병행하고 있고, 우리는 그가 약간의 불편함이 있을지라도 사회로 정상적으로 돌아올 수 있는 도움을 주기 위한 하나의 '작전'을 진행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되네.
- ...아이들은요? 나타에게 다치고 마음의 상처를 받은 아이들은요?
- 그 정도는 일단 자네에게 맡겨주고 싶은데 어떤가? 우리 신서울 지부에서 검은양팀 관리요원인 김. 유. 정. 이라는 사람에 대한 신뢰도가 아주 높다는 것에 대해서는 누구도 이견이 없을텐데 말이지. 지금까지 보여준 능력만으로도 그 검증은 충분하다고 생각되네. 이번에도 그들을 잘 이해시키고 협력하게 할 수 있을걸세. 누구나 그렇듯, 나 또한 자네를 믿으니까.
- ...그렇지만 이건 너무 아니라고 생각되는데요.
- 유정씨, 자네가 그동안 아이들과 함께 부대끼고 어울리면서 느낀게 있지 않나? 아이들은 순수해. 티없이 맑지. 우리들은 그 아이들에게 그동안 상처만을 강요해왔네. 부끄러운 일이지. 나타에게도 그런 아픔이 있고 과거가 있는거라고. 그들이 상처 받은만큼 감싸 안아줘야할 의무가 우리 어른에게 있다고 생각되지 않나? 이번 작전이 성공한다면, 나타군 뿐만 아니라 검은양 팀에게도 작은 변화와 치유의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되네. 만약 실패한다고 해도, 나타군에게 돌아갈 곳이 없는 건 아니지만, 후자의 경우보다는 전자의 경우가 난 더욱 더 희망적이고 보람있는, 마음의 빚을 내려놓을 수 있는 기회가 될거라고 생각하네. 자, 앞으로 검은양팀과 잘 협력해서 필요한 부분을 채우고 부족한 건 내게 얘기해주게. 이번 작전에 대해서 물심양면으로 지원할 준비는 되어있으니.
- ...
- 아 그래 좋아, 이 작전의 이름을 정하지 않았군. 음... 일단 이렇게 해두는걸로 하지. '늑대개 길들이기' 작전으로.
- ...알겠어요. 이만 끊을게요.
- 음, 필요한 내용은 다 전달한 것 같으니 휴식 차원에서 잠시 차나 한 ㅈㅏ... (털컥)

그 날, 하교를 마친 검은양팀의 동아리방

- ...네? 뭐라구요?!
- 그래 그렇게 된거야. 일단 너희들이 잘 도와줘야겠다라는 말 밖에 할 수가 없구나. 도움이 필요하거나 긴급한 일이 생기면 언제든지 얘기해. 나타가 학교에 다시 오게 된 것이 너희에게 어떤 의미인지는 잘 알아. 하지만 그런 말도 있잖니?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고 말이야. 일단, 잘 부탁한다는 말 외에는 아직 특별히 해줄 수 있는게 없구나.
- (......후)

동아리방이 잠시 정적에 잠긴다. 유리마저도 조용히 심사숙고하는 모습이다(라고 해봤자 ㅇㅁㅇ...). 그리고 잠시 뒤에 슬비가 입을 열었다.

- 무슨 의미인지는 알겠어요. 하지만, 당장 우리 팀이 나타를 학교에서 반갑게 맞아줄 수 있는 상황은 아니라고 생각되는데, 혹시라도 충돌이 있으면 어떻게 되는거죠? 중요한 건 그 곳은 우리 같은 위상능력자들이 있는 곳이 아닌, 그저 평범한 학교 중 하나라는 거에요.
- 일단 그 점에 대해서는 충분히 제어가 될 수 있는 상황이라는 건 확인시켜주고 싶구나. 위험한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을 경우 그 가능성부터 차단할 수 있는 준비는 해놓은 상태란다. 그리고 나타에게는 지속적으로 도움이 가고 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그런 문제는 거의 발생하지 않을 수 있을거라고 지부장님은 생각하고 계셔.
- 하지만 그건 생각일 뿐이라구요! 슬비도 유리도 테인이도 제이 아저씨도(제이- 아 난 괜찮아 괜찮은데 그 아저씨는 좀 어떻게 뺄 수...) 다 그 놈한테 다치고 위협받은게 있는데 무턱대고 이런 식으로 우리와 붙여버리면 어떻게 하라는 거에요? 어제 테인이가 그 소식을 전해듣고 알게 모르게 불안해하는게 눈에 보였단 말이에요.
- ...그래 너희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알고 있어. 그렇지만, 나타도 너희들 또래 위치에 있는 아이이고, 앞서 설명했던대로 충분히 기회를 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너희들의 의견을 전적으로 반영할 수 없는 상태에서 이런 작전이 시작될 수밖에 없다는 걸 이해해주길 바라는거야.
- 하... 하지만!
- 그 정도면 된 것 같아 세하야. 유정 언니. 일단 무슨 뜻으로 이 작전이 진행되는지는 알 것 같아요. 다만, 한 가지는 확실하게 했으면 좋겠어요. 이 일로 검은양팀 내부에 큰 문제가 생기지 않을거라는 약속. 확실히 해주세요. 나타에게 우리가 줄 수 있는 도움은 줘야한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으로 인해서 우리가 흔들리는 일은 용납할 수 없을 것 같아요. 그 정도는 받아주실 수 있는거죠?
- 그래, 물론이야. 나도 너희들이 더 이상 다치는 모습을 보고 싶은 건 아니니까. 근데 아까부터 유리는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고 있니? 그렇게 생각만 하다가 졸거나 그러ㄴㅡ... 응? 너 설마... 조는거니!?
- (으웅)아, 아니에요! 안 졸았어요. 그러니까, 우리가 나타랑 잘 놀아주면 된다는 내용인거 아니에요? 하지만 우리 팀원들이 나타 걔 때문에 다치고 그러면 또 어떡해요? 게다가 난 아직 그 놈이 날 갖고 고깃덩어리니 뭐니 했던 그 말 아직도 잊지 않고 있다구요!
- (...;;;)그러니까, 그런 일이 없도록 약속하겠다고 방금 얘기를... 했단다;

라고나 할까

그래서 나타는 우여곡절 끝에 검은양팀의 이해를 받아 본격적으로 정상적인(?) 학교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하더라.

- 2화에서


Posted by SamM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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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그러운지 아닌지 모르겠는 햇살이 내리쬐는 아침, 주방은 학교를 가야할 아들을 위해 아침식사를 준비하는 어머니의 분주함으로 가득하다. 매일 돌아오는 아침이 뭘 그리 특별하겠냐마는, 어머니에게는 오늘 아침 아들의 시작을 무엇으로 열어줄지에 대해 고민하는 의미있는 일과 중 하나인 것을.
바쁜 주방일을 하시던 어머니가 등 뒤에 있는 시계를 보고는 아들의 방에 한 마디 쏘아붙인다.

- 세하야, 안 일어나니?

물론, 응답이 있을거라 기대한 적은 최근 몇 년새 단 한 번도 없다. 늘 그랬듯 아침 기상시간은 전쟁이었으니까.
문을 열어젖히고, 늘 비슷한 자세로 엎어져 누워있는 아들을 만난다. 한 손에는 게임이 아직 켜진채 배터리 충전기가 연결된 게임기가 포근하게 안겨있었고, 얼굴은 베개에 엎어진 채 미동도 없이 잠들어있었다.
늘 똑같은 아침 풍경, 그리고 늘 똑같은

- 이. 세. 하! 안 일어날래!?

'꿈틀', 그제서야 서서히 꿈틀대는 모습이다. 새벽 내내 무엇을 했을지 뻔한 상태인데 어느 어머니가 이런 고함소리 한 번 안 치고 넘어가실까.
조금의 움직임을 보이던 이세하가 다시 침대를 정적으로 만든다. 이것도 역시나다. 한 번에 일어나는게 기적일 뿐. 그리고 이어지는 맑고 청량한

- 짝!
- 아악!

세하 어머니는 등짝 스매싱을 날렸다! 어머니의 트루 데미지 효과는 굉장했다!
잠결에 꿈틀대던 몸뚱이가 벌떡 일어나는 것이다. 늘 비슷한 기상 패턴이지만 단 하루도 익숙해질 수 없는 아픔은 세하가 아침을 상쾌하게 시작하기를 방해하는 불편한 점 중 하나다.

- 일어났으면 아침 먹고 학교 가.
- (하품과 함께) 후아암... 네.

반쯤 뜬 눈으로 아침을 먹고 씻고 가방과 게임기를 챙겨 세하는 등교길에 오른다. 어제까지만 해도 줄기차게 쏟아지던 빗줄기들이 새벽 사이에 다 잠잠해지고 맑은 하늘이 드러났다. 등교길 여기저기에 있는 웅덩이에 비치는 햇살이 이세하의 졸린 눈에 수시로 묠니르를 꽂는 느낌이다(물론 당사자는 그게 무슨 느낌일지 잘 모를테지만). 항상 졸음과 싸우면서도 지각은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지각이라도 했다간 부모님께 연락이 가는게 기본이고, 그 다음은... 자세한 내용은 생략한다.
몰려오는 피곤과 졸음을 견뎌내고, 어떤 상태로 걸어나갔는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2학년 C반 교실에 도착한 이세하. 잠시 두리번거려보니 역시나 서유리는 오늘도 늦는 모양이다. 창가의 자기 자리로 도착해 뒤를 돌아보니 피곤에 찌들어 충혈된 눈과 다크서클을 가진 다크포스의 한 사내가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게임기를 붙잡고 있었다.

- 후아암... 석봉아 안 피곤하냐?
- 어음... 아니야 지금 이 정도면 괜찮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 (힐끗) 너 벌써 여기냐? 야 너무 혼자 달리는거 아냐?
- (축 처지는 목소리로) 그거야 네가 같이 던전을 돌다가 갑자기 자버렸으니...까...
-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역시... 넌 게이머들의 귀감이야.

여느 날처럼 별다를 바 없는 하루다. 간간히 차원종 습격에 대한 소식이 들려오지만 어른들이 흔히 말하는 피라미같은 놈들이나 가끔 등장한다고 한다. 당장은 클로저라 해도 나설 필요도 없고 나설 생각도 없다. 너무... 힘들었다고나 할까.

그동안 있었던 일련의 수많은 사건들을 지나보내고 나서, 세하는 한층 더 성숙(한 게임 실력을 보유)해졌다. 신서울 전역을 누비며 수많은 차원종들을 맞닥뜨린 탓에 한동안 피곤에 찌들어 지쳐있었지만, 그래도 금방 회복해서 했던 첫 일이라곤... 역시 게임이었다.

= 그래도 좋잖아? 열심히 차원종 레이드 한 공로도 인정받아 돈도 많이 받았으니 게임에 더 투자해야지!

당연스럽게도... 지당한 생각이었다.

- 자, 다들 앉아라.

왁자지껄하던 아침의 교실이 우당탕 소리와 함께 쥐죽은듯이 조용해졌다. C반 담임선생의 등장이다.

- 오늘도 아침부터 다들 한바탕 하느라 정신 없는거냐? 엉? (드르르륵, 쾅! 우당탕탕!) 야 서유리! 넌 지금 늦게 오는 것도 모자라서 왜 아침부터 난리법석이야? 책상 부서져 임마!

그럼 그렇지 싶은 순간이다. 왜 서유리가 교실에 없나 했더니 당연히 지각이다. 위상력에 눈 뜬 뒤 클로저로서 수많은 작전을 펼치고 전장에서 살아돌아왔지만, 주체할 수 없는 10대의 혈기는 늘 여전해서 저렇게 가끔 감당하기 힘든 사고를 친다. 이미 교실 바닥에 발자국이 푹 패인 자국을 보자하니 그걸 바라보던 이세하는 한숨부터 나온다. 나뒹군 책상 몇 개를 서유리가 급히 주워서 정리한다.

- 또 교실 난장판으로 만들고 지금 뭐하는거야? 그러고도 클로저야? 고생했으면 고생한만큼 보람이라도 있어야지 이렇게 힘 조절이 안 돼서야 원...
- 죄송해요 선생님! 그치만 오늘 너무 피곤해서 늦잠을 자는 바람에 급하게 달려오느라 그런걸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구요.
- 에휴 됐다 됐어. 너 늦잠자고 지각하는게 하루 이틀이냐? 어찌된게 클로저가 되기 전이나 되고 난 후나  달라진게 없냐 너는. 자 됐고 다들 앉으면 긴히 할 얘기가 있으니 그런 줄 알어.

가벼운(?) 서유리의 지각 소동 이후로 담임선생은 이 말을 남긴 뒤 다시 교실 밖으로 나갔다. 또다시 교실이 웅성웅성해지는가 싶더니, 담임선생이 누군가를 데려오...는데

- (?!?!) 어엇? 너는?
- (?!?!) 야 뭐야! 너 여기 왜 온거야 너?!

세하와 유리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이 순간 그가 여기에 있을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너무나 깊이 인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가 자기네 또래였을 것이라는 건 처음의 만남을 통해서 대충 짐작은 했었는데, 그렇다고 이런 장소에서 이런 신분으로 같이 만나게 될 것이라고는 단 한 순간도 생각해보지 못한만큼, 당혹스러운 일이었다.

- 자, 너희 둘은 조용히 하고, 자기소개부터 해라.
- 나타라고 한다. 불만있나?
- 학생, 말 좀 곱게 쓰라고 부탁했잖냐.
- 왜? 내가 내 인사 하겠다는데 왜 신경 써.
- (...고개 돌리며) 하아...

담임선생도 한 숨이 절로 나올만큼 당혹스러운, 받아들이기 싫은 현실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다른 애들은 영문도 모르겠다는듯이 나타를 쳐다보고 있었지만, 세하와 유리는 교탁 앞에 서있는 저 단정한 교복차림의 삐친머리 소년을 입이 멍하니 벌어진채 한참을 쳐다보고 있었다.

대공원에서의 악연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싶다. 같은 클로저인 자신들의 목숨마저 위협했던, 적으로 만났던 자를 교실에서 학교 친구(?)라는 위치로 만나게 되다니, 도대체 유니온과 벌처스는 이 범죄자를 어떤 목적으로 이런 무방비한 교실에 던져놓는 것인지 아무리 생각해도 당췌 이해할 수 없었다.

나타는 간단한 자기소개 이후 누구에게도 관심 없다는 듯이 흘기듯 교실을 둘러봤다. 그리고 세하와 유리가 붙어있는 자리쪽을 보더니 둘을 향해 씨익 미소를 짓는 것이 아닌가? 세하와 유리는 동시에 돋아오르는 소름을 느꼈다. 다만,

= (세하, 유리) 살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전에 대공원에서 만났던 때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나타의 위상력도 비교적 안정돼있는 상태였고, 비록 상황에 따라 급변할 수 있다고는 해도 지금 당장은 그 전에 보았던 모습과는 다르게 약간 차분한 인상을 주고 있었다.

세리둥절 유리둥절 하는새 간단한 소개가 끝나고 나타의 자리가... 비어있던 석봉이의 뒷자리로 결정나버렸다.

= (세하, 유리) !!!!

교실 창가 옆 나무에 앉아있던 새 한 마리가 푸른 하늘로 날아올랐다. 평화로운 교실에 점점 알 수 없는 음습함이 찾아들고 있었다.



- To be continued


Posted by SamM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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