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타를 노린 습격이 있고 며칠이 지나고, 잠시 유니온의 보호관찰 속에 학교로 나오지 않던 나타가 학교로 나오게 되었다. 검은양팀에게도 관련된 내용이 전달되었지만, 그 때 당시처럼 돌발적인 나타의 행동이 있을 경우 확실한 보호대책을 강구하기 어렵다는 것이 확인된 이상, 나타의 교복에 달려있던 구속력 제한을 일정부분 더 풀어줄 수밖에 없었다. 김유정은 검은양팀 멤버들에게 이 사실을 전달하면서 그들을 믿기 때문에 이런 조치를 취했노라고 이야기를 하긴 했지만, 어째 찜찜한 기분을 떨쳐낼 수는 없는 것이다.
나타가 돌아온 것을 본 C반의 다른 학생들은 애써 나타를 신경쓰지 않는 모습들이 역력했다. 아무래도 나타의 과거에 대해서 학생들에게 알려진 바는 당연히 없지만, 모습과 분위기에서 풍겨져오는 인상이 결코 긍정적이진 않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기피하는 분위기가 생기는 모양이었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교실 분위기지만, 한 구석의 공기만 괜시리 무겁게 느껴졌다.
- (작은 목소리로)나타! 그 때 일은 괜찮은거야?
분위기를 무마해보기 위해 유리가 작은 목소리로 나타에게 말을 걸었다. 아무래도 정 많은 유리는 나타의 피습 이후로 줄곧 걱정을 해온 탓에 나타가 돌아오자 한 번 물어보기로 작심한 모양이다. 그에 비해 나타는 그런 것에 전혀 개의치 않는 듯 하지만...
예상대로 굳이 입을 열지 않는 나타를 보면서 유리는 못내 걱정을 떨치지 못하는 모양이다. 수업 중간중간 쉬는 시간만 되면 나타에게 장난을 걸기 위해 노력하는 듯 했지만, 그다지 쉽게 마음을 열 생각이 없는 나타에게는 그저 귀찮고 짜증나는 짓이었을 뿐이다. 점심시간이나 몇몇 쉬는 시간에는 슬비도 와서 사명감에 찬 걱정어린 얘기를 조금 해주었지만, 역시나 나타의 반응은 귀찮다고 석연찮다는 듯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어째 그런 반응 중간에도 세하를 힐끗 쳐다보는 행동이 계속 됐는데, 그러지 않을 나타라는 놈이 갑자기 그런 모습을 보이니 세하도 신경쓰지 않을래야 신경쓰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었다.
= 이 자식은 그래도 나한테 뭐 고마울 수 있는 감정이라도 있는건가? 나도 저 놈 귀찮은데...
그렇게 신경쓰이고 불편한 학교의 하루 일과가 마무리되어갈 쯤...
- ...야, 이세하.
- 왜?... 어? 뭐라고?
- 널 불렀다. 뭐 특별한거 있냐?
- ...아냐 아니, 왜 부르는건데
- 잠깐 따라와봐라.
잠시 주저하던 나타가 세하의 옷깃을 부여잡아 끌고 교실 밖으로 나왔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어안이 벙벙벙해서 그대로 끌려나간 세하에게 나타가 말을 건넸다.
- 너, 어디 사냐?
- ...ㅁ...뭐? 뭐라고?
- 어디 사냐고 물었다. 짜증나니까 빨리 말 해.
- 아니 그러니까 그걸 도대체 왜 묻는데?!
당장 며칠 전에 있었던 악몽을 기억하고 있는 세하는 당혹스러움에 반사적으로 거부반응을 나타냈지만, 이어서 떨어지는 나타의 말에 세하는 그 자리에서 굳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 당분간 너네 집에서 있어야 돼. 그 뿐이다.
- ...ㅁ...뭐? 그게 무슨?!
- 한 번에 못 알아들어? 나도 지금 짜증난다고.
말 그대로 있는대로 짜증을 내며 나타는 다시 교실로 들어갔다. 곧 종례시간이 다가올 것이다. 세하는 생각을 정리했다. 어짜피 다시 또 유정 누나에게 전화를 해봐야 돌아오는 대답은 왠지 뻔할 것 같았다. 안 그래도 이번 일로 유정 누나도 엄청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으니 굳이 또 전화를 해서 이 얘기를 꺼낼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그러니 패스하고, 당장 이 나타라는 놈을, 그것도 자기 집으로 들여와야한다는 자체가 이해가 안 됐다. 우리 집은? 우리 엄마는 나타가 우리 집에 온다는 상황을 알고는 있는거야?
문득 여기까지 생각이 뻗친 세하는 종례시간인 걸 금새 망각한 채 다시 화장실로 달려가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 (뚜르르르르)어 세하야. 무슨 일이니?
- 엄마! 잠깐만요 나타가 우리 집으로 와야한다는게 무슨 소리에요?
- ...나타 잘 챙겨서 같이 오너라.
- 아니 엄마! 이게 무슨 소리냐고요? 도대체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거에요?
- 잔말 말고 시키는대로 하려무나. 무사히 잘 데려와. (처커득)
이미 다 알고 계셨...었으니 이런 상황이 펼쳐졌겠지. 라는 생각과 함께 세하가 힘빠진 발걸음으로 다시 교실로 향했다. 이미 다른 반들은 종례를 모두 마친건지 학생들이 우르르 쏟아져나오고 있었다. 다소 심란한 마음으로 교실에 돌아온 세하는, 아직 가방을 싸서 집으로 갈 준비를 하지 않은 C반 학생들과 담임선생님의 뜨거운 시선을 받아야만 했다. 그리고 떨어지는 불호령.
- 이세하! 어딜 갔다가 이제 들어오는거야! 너 때문에 여기 있는 친구들 다 기다리고 있다!
아뿔싸... 나타 때문에 종례를 잊어버린걸 뒤늦게 떠올리고 하얗게 질린 세하였다. 그리고, 또다시 시작된 잔소리와 함께 종례시간은 30분이나 더 길어지고 말았다. 또한 잔소리를 듣는 내내 세하는 앞으로 나와 벽을 바라보고 손을 들고 있어야만 했다.
팔 아프고 귀 따가운 종례가 끝나고, 슬비와 유리, 테인은 잠시 검은양 동아리방으로 가야한다며 먼저 떠났다. 세하도 동아리방으로 향하고 싶었지만, 일단 나타를 집으로 안내해줘야할 임무가 생겨버렸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나타를 데리고 멤버들과 헤어지고 말았다. 집으로 향하던 중 문득, 이 둘이서 교복을 입고 같은 집을 향하는 그림이 머릿속에 그려지자 세하는 정말 상상할 수 없는 일이 현실로 일어났다는 것을 깨달으며 순간 소름이 돋고 마는 것이다.
- ...뭐냐, 버러지.
- 아, 아니야 아무것도.
- 방금, 뭔가에 놀라는 것 같았다고
- 신경 쓰지 마. 매사에 귀찮다는 놈이 왜 이런건 굳이 신경쓰는데?
- ...글쎄
= ...도대에 이 분위기는 뭐야
그닥 평소같지 않은 예민한 반응의 나타가 익숙하지 않은 세하는, 역시나 평소같지 않은 분위기의 괴리감을 느끼며 나타를 데리고 집에 도착했다.
- 어서와라. 저녁 먹을 시간이 거의 다 됐는데 왔으면 일단 가방 풀고 있어라. 그리고 손도 좀 씻어놓고. 밖에 나갔다 왔으면 항상 먼저 씻으라고 얘기했지?
저녁 시간이 다가오면서 분주해지는 주방이다. 국 끓는 소리가 요란하게 주방을 채우고, 밥상머리에는 평소 봐왔던 2개의 밥그릇이 아닌, 또다른 하나의 밥그릇이 더 자리해있었다. 반찬도 왠지 평소보다 더 많은 느낌이라고 할까. 첫 날이라고 손님맞이를 넉넉히 해주시려는 모양이다. 2층에 위치한 쓰지 않던 집구석의 방 하나는 아침낮 사이에 사람이라도 불러서 한 건지 몰라도 나타의 것으로 보이는 물건들이 그닥 깔끔히 정리되지 않은 채로 모여있었고, 그 방에 나타가 들어가 가벼운 방 정리를 하고 있었다. 바로 옆 방의 세하도 짐을 풀어놓은 채 침대에 누워 온갖 생각에 빠져들어가고 있었다.
- 세하야. 짐 다 풀었으면 좀 나타하고 나와라. 밥 먹어.
어머니의 호출에 세하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바로 옆 나타의 방은 굳게 닫혀있었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가니 나타는 방 구석 의자에 앉아 먼 산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자신의 무기를 휘휘 돌리고 있었다.
- 야! 나타. 집에서 위험하게 그걸 돌리고 있으면 어쩌라는거냐? 빨리 나와. 밥 먹게.
순간 세하를 향해 쏘아보는 눈빛에 세하는 살짝 움찔했지만, 그것과는 상관없이 무심하게 일어나 무기를 손에 챙겨들고 주방으로 향했다. 나타의 뒤를 따라 주방으로 내려온 세하. 나타는 거실 한구석에 있는 세하네 집 장비 보관함 옆에 무기를 내려놓고 식탁으로 되돌아왔다. 차원전쟁을 관통한 조잡했던 구식 건블레이드 하나와, 짧은 순간 온갖 고초를 겪으며 세하와 함께 성장해온 건블레이드 하나, 그리고... 수많은 이들의 말라붙은 핏자국이 담겨있을... 저 쌍검. 희생된 영혼들의 속박이 저 두 검의 운명을 이은 줄처럼 나타를 그토록 짓눌러왔으리라.
- 잘 먹겠습니다
- ......
식탁은 조용했다. 평소에도 그랬지만 오늘은 더더욱 조용하게 숟가락과 밥그릇, 반찬그릇이 부딛히는 소리만 부엌을 요란하게 울렸다. 나타는 생각보다 음식을 가리는 편은 아니었다. 있는 반찬이며 국이며 괜찮게 잘 먹는 모습이었다. 물론 나타가 언제나 그렇듯 그런걸 가릴 처지가 있었겠냐마는, 어쨌든 뭐든 잘 챙겨먹는 모습은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조금이라도 더 좋은 인상을 갖게 하는데 도움이 되는 법이다. 물론 나타가 그런걸 의도했을리는 만무하지만서도...
- 밥맛은 괜찮았는지 모르겠구나. 들어가서 쉬도록 하렴. 그리고 세하 너는 여기 있는 식탁 모두 정리하고. 설거지 해놔라.
- ...네
2층으로 올라가려던 나타는, 세하가 설거지를 한다는게 문득 궁금해서인지 부엌 정수기에서 물을 한 컵 마시면서 대충 어설프게 서성이고 있었다. 생각보다 의도가 티나는 행동에 세하는 뭐라 할 말도 잊은채 그저 설거지에 집중하기로 한다. 달그락달그락 하는 소리와 함께 평소처럼 여유있는 솜씨로 설거지를 하는 세하. 잠깐 물을 더 마시던 나타는 그 모습을 조금 보더니 바로 다시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설거지과 몇몇 집안일을 마친 세하는 다시 게임을 하기 위해 방으로 들어갔고, 그 뒤로 나타와 세하 모두 방 밖으로 나오는 일은 없었다. 물론 세하의 어머니도 둘을 찾는 일은 딱히 없었다.
뜬금없이 당황스럽고 마음만 심란해지는 하루가 또다시 이렇게 지나가는 것이다.
- 5화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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